인간은 보통 시기와 질투의 동물이라죠. 특히 성적지상주의로 대표되는 무한경쟁사회에서 자라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내 주변 사람들과의 끊임없는 비교는 살아가면서 떨쳐버릴 수 없는 지독한 굴레이기도 합니다. 물론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라면 남들의 성취와 관계없이 자신만의 인생을 꾸려나갈 수 있겠죠. 하지만 저는 아직 그런 경지에 다다르지 못했기에, 아직도 주변 사람들과의 비교에 힘들어하는 사람이기에 뭐라 드릴 말씀은 없네요 ㅎㅎ
그런데 이런 저에게도 타인의 성취가 꼭 시기와 질투, 부러움으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성취의 시작과 끝을 지켜봤을 때 입니다. 그 사람이 오랜 시간동안 기울여온 노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면, 우리들은 오히려 숭고함을 느끼게 되죠. 오늘 그런 감정을 갖게 해 준 책을 하나 소개해 드리려고 해요. <퇴사 말고 휴직 : 남자의 휴직, 그 두려움을 말하다> 의 작가 최호진 님과 함께.
https://blog.naver.com/tham2000
1. 최호진 님은 성장판 독서모임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오프라인 독서모임을 함께 하진 못했지만 호진님이 꾸준히 올려주시는 글을 보며 '아 이분은 조만간 책을 내실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었죠. 김민식PD님의 프로토 타입 느낌이랄까요? 위 블로그를 보시면 최호진 님이 그동알 얼마나 꾸준하게 글을 써 오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호진님의 글을 보면 우리 주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직장인의 삶을 그려내고 계시거든요. (지금은 평범하지 않으시지만요) 게다가 15년차 금융맨이라는 수식어에서 볼 수 있듯이, 건실한 대기업에 취직하여 오랜 기간 직장인으로 살아오셨죠. 우리도 빈번하게 느끼는 사내정치, 인간관계, 업무의 매너리즘 등을 느낄 수 있는 글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두 아이의 아버지로도 훌륭한 역할을 하고 계시구요.
2. 그런 최호진님이 돌연 휴직을 신청하게 됩니다. 실리콘 밸리로의 출장에서 만난 한 인연으로부터 '삶의 균열'을 발견하게 되셨다는 표현을 쓰셨어요. 물론 남성 직원의 휴직을 받아들여주는 건실한 회사, 호진님의 뜻을 적극 지원해주는 아내분의 독려가 무엇보다 큰 힘이 되었다고 하셨지만 어쨌든 내가 내리는 결정의 책임은 오롯이 나에게 있는 것이니까요. 무엇보다 저는 삶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표현이 왜 그렇게 좋던지요.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분더캄머 독서모임이라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운영하면서 제가 만나는 사람들의 타입이 많이 달라지기 시작함을 느꼈습니다. 내가 평소 만나는 사람 5명의 평균이 내 삶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죠. 제 2년전과 지금의 주변인들을 떠올려보면 정말 큰 차이가 있거든요. 지금 보면 커보이는 균열이 1년 전만 하더라도 실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균열의 깊이를 더해준 것은 제가 만나던 사람들의 힘이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 주었습니다.
3. 다시 책의 내용으로 돌아와 보면 <퇴사 말고 휴직>은 휴직의 시작점에서 복직을 앞둔 지금까지의 얘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년 반이라는 짧은 시간에 작가님이 겪은 많은 경험들이 녹아있어요. 휴직이 시작되고 나서 삶의 루틴을 찾는 과정, 아내에게 휴식을 주고 아이들과의 추억을 쌓으려 떠난 캐나다로의 여행, 복직을 앞두고 새롭게 깨달은 삶의 의미 등이 큰 틀로 나타납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색다른 이야기가 스토리텔링이 되고, 출판이 되는 지금 최호진님의 1년 반 휴직기는 많은 아빠들과 직장인들에게 큰 질문을 던집니다.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잘 살고 있는가? 내가 놓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 부모로써 가져야할 태도는 어떤걸까? 와 같은 것들 말이예요. 저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고, 직장경험도 이제 5년차에 접어드는 물빠진 신입사원이지만, 새롭게 생각해볼 내용이 많았어요. 내용 이외에도 오랫동안 블로그에 글을 쓰신 내공 때문인지 글이 술술 읽혔습니다. 에세이는 역시 재미가 있어야 잘 팔리잖아요? 토요일 오전을 순삭하게 해준 마약같은 책입니다.
4. 호진님이 출판을 하신 뒤, 기쁜 마음으로 서평단을 신청해서 책을 받아 읽게 되었습니다. 출장과 여러 일들이 겹쳐 배송이 된 지 한주가 지난 지금에서야 읽게 되어서 죄송한 마음이지만,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책이였어요. 어쩌면 제가 호진님의 글을 예전부터 읽어왔기에 아주 적당한 수준의 기대를 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족은 원래 성과보단 기대에 크게 영향을 받으니까요. 그런데 최근 이 책이 소개된 네이버의 기사를 봤습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악플이 많이 달려있더군요. 팔이 안으로 굽어서 인지 몰라도 제가 다 맘이 아팠습니다. 물론 네이버 기사에 엄청난 퀄리티의 댓글이 달릴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이 책에 대해 알아보거나 기사는 읽고나서 의견을 남기는게 맞지 않을까요? 금융맨, 휴직, 캐나다 여행이라는 몇몇 자극적인 단어에만 몰입하여 "배부른 소리" 라든지, "절대 책 안팔아준다" 라는 댓글을 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시야를 가리는 몰상식한 태도라고 생각이 듭니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이 책이 크게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 줄의 제목이나 몇 개의 단어만으로 책을 판단하는 것은 굉장히 무책임한 행동이 아닐까 싶어요.
이렇게 글을 쓰는 저도 위에 언급한 것처럼 팔이 안으로 굽은 것일 수 있기에, 객관적으로 이 책의 추천 독자들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첫째로, 평범한 일상 속에서 권태를 느끼고 있는 분
둘째로, 삶의 변화를 가져오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는 분
셋째로, 휴직을 고려하는데 확신이 없으신 분
넷째로, 자극적인 소재나 단어에 매몰되지 않고, 맥락을 이해할 수 있으신 분
다섯째로, 평범한 주변인의 색다른 에세이니 만큼, 엄청난 삶의 통찰을 기대하지 않으실 분
이런 조건들에 부합하는 독자들이라면 크게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사실 일반인의 에세이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 사람입니다. 개인적으로 인생의 클라이막스를 지나본 사람이 인생을 돌이켜보며 쓰는 에세이가 좀 더 가치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요즘 우후죽순처럼 출판되는 몇몇 셀럽들의 에세이 행렬을 그리 좋게 보지 않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호진님의 책은 많은 직장인 남성분과 아빠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조금 기대를 내려놓고 편한 마음으로 주말에 읽어보시면 좋겠어요.
가끔은 적당한 기대속에 풍부한 감상이 남기 마련이니까요.
'북플릭스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세대를 비추는 또 다른 필터,『우아한 가난의 시대』 (0) | 2020.08.29 |
---|---|
독서를 통해 이동진을 탐구하다, 『이동진 독서법』 (0) | 2020.08.13 |
내 삶을 바꾸기 위한 독서&글쓰기, '서평 글쓰기 특강' (0) | 2020.03.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