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낯설지만 익숙한 그 이름 '이동진'
'이동진' 이라는 이름은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지 않았을까. 영화 감상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평점' 으로 시작되는 글들은 읽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나에게 영화란 소개팅에 이어지는 가장 고전적이며 흑심을 감추기 좋은 에프터 방법 정도였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인생영화도 없고, 재탕 삼탕을 하면서 마음속에 고이 소장해놓은 작품도 없다. 쓰다보니 오히려 영화에 대한 애정으로는 평균보다 한참 이하인 사람이라는 생각도 든다 ^^;
이런 나도 이동진 이라는 이름은 여러 커뮤니티에서 수없이 들어보았다. 전문가의 견해와 숫자로 매겨지는 가치에 민감한 대한민국의 특성 때문일지 몰라도,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은 작품 선택에 있어 평론가들의 평점에 많이 의존하는 것 같다. 물론 네이버 영화란의 리뷰들을 보면 평론가들의 박한 평점을 지적허세라고 비꼬는 네티즌들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것이 안티지성의 확산인지 국민들의 절대적인 문화수준이 높아져서 인지는 나로써는 모르겠다만...
어쨌든 그런 재미있는 현상을 관찰하며 곁가지로 이동진이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났다. 그래서 집어든 책이 바로 오늘 서평을 쓰게 된 <이동진 독서법> 이다. 불온서적같은 빨간 표지에 아담한 사이즈, 많지 않은 분량에 서점에서 주저없이 구입한 기억이 난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독서를 시작했지만, 다 읽고난 감상은 사실 독서법 이라기 보단 '이동진' 이라는 사람의 매력을 발산하는 인간 에세이에 더 가깝다고 평하고 싶다.
#2 끊임없이 책을 읽는 사람의 독서기
무려 만 칠천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다는 이동진 평론가. 그런 책을 소장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점이 일단 부러웠고, 그 방대한 책을(물론 다 읽지 못한 책도 많다곤 하지만) 읽고 또 깊게 사유하는 시간을 가진 그의 삶은 더욱 부러웠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흔히 느끼는 절대적 독서시간의 부족은 그에게는 왜 해당하지 않는걸까? 그런 부러움과 시기심을 안고 책을 읽어나가면 독자는 '이동진' 이라는 사람의 내면과 인생의 서사를 어느새 받아들이게 된다. 왜 그가 책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물론, 어떻게 무엇을 읽었으며 왜 실패(그는 자신의 독서에 많은 실패가 있었음을 고백한다.) 했는지 까지 말이다.
책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는 책과 책 읽기에 대한 그만의 다양한 생각들이 담겨있다. 2부는 씨네21의 이다혜 작가와의 대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의 작가와 동일인물인 것 같다. 저 책도 꽤 재미나게 읽은터라 2부에서 이다혜 작가가 등장하는 순간 묘한 반가움이 느껴졌다. 좋게 읽은 책의 저자가 다른 책에서 등장인물로 나온다는 것, 나름 신선한 경험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백미는 1부에서 거의 다 나온다고 생각하고, 2부에서는 그 내용을 재미있고 솔직하게 풀어내는 느낌이었다. 책의 분량을 늘리기 위한 구성이라는 의심도 폴폴 생겼지만, 오랜만에 등장하는 인터뷰체의 형식이라 또 색다른 느낌으로 읽을 수 있어 좋기도 했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독서법'에 대한 미련은 잠시 놓아두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적인 독서법을 찾아 헤멘지 어언 2개월....(?) 나 책 좀 읽어봤다 하는 사람들의 말은 거의 일맥상통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뼈저리게 느낀 점은 책에 압도당하지 않아야 하며, 비판의식을 가지고 비평하면서 읽어야 한다는 점. 마지막으로 그런 의식을 갖기 위해서는 결국 많은 독서와 사유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가지를 확인하면서 이 책에 대한 나의 평가는 수직상승했다. 결국 읽고, 쓰고, 타인과 토론해야 한다. 나는 쓰는 것 빼곤 잘하고 있었다....ㅠㅠ
#3 빨간책방
책을 읽고 난 뒤 내친김에 이동진의 팟캐스트인 '빨간책방'도 한 번 들어보았다. 2018년 12월에 300회 특집으로 종영하여 더 이상 새로운 에피소드가 올라오지 않지만, 말했다시피 300편이다! 일반적으로 1권의 책 당 2편의 에피소드를 할애하는 것을 고려하면, 적어도 150권 이상의 책들을 그의 시선을 통해 읽어낼 수 있다는 말이다. 특히 이다혜 작가, 김중혁 작가 등 게스트진도 여간 화려한게 아니다. 독서내공이 깊은 사람들의 책 이야기를 듣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일인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물론 TvN 요즘 책방도 재미있게 보았지만, 빨간책방은 그와는 또 다른 매력을 갖고 있다. 요즘책방이 대중성에 집중했다면 빨간 책방은 여러 배경지식을 첨가해 줌으로써 더 깊게 책을 이해하는데 강점을 가진다. 평소 운전하는 시간이 많은 나에게 좋은 독서 팟캐스트는 '생산적인 시간소비'라는 뿌듯함을 안겨준다. 특히 트렌드에 민감하지 않은 빨간책방의 선정도서는 2년전의 팟캐스트라는 시간적 단점을 충분히 무시할 수 있었다.
나처럼 생활속에서 운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분들은 꼭 들어보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부분의 팟캐스트 어플에서 무료로 청취가 가능하다 :)
http://www.podbbang.com/ch/3709
★ 글을 쓰기 위해 빨간책방을 검색하던 도중, 작년에 유튜브로 빨간책방 시즌2를 진행 한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도 물론 종영되긴 했지만 새로운 오아시스를 하나 더 찾은 느낌이랄까? 이 역시 링크 첨부!
https://www.youtube.com/c/%EB%B9%A8%EA%B0%84%EC%B1%85%EB%B0%A9TV/featured
#4 마무리하며,
독서모임을 운영하면서 발제는 항상 고민이다. 깊이, 시간, 범위 등 다양한 멤버분들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그 어느 지점을 찾기 위한 고독한 작업이기도 하다. 아무리 카페에서 하루종일 꽁꽁 머리를 싸매도 막상 모임 당일이 되면 그렇게 허접해 보일수가 없다. 책에 압도당하기는 싫어서 나름대로 비평적 요소를 넣어보려고 하지만, 내 절대적 깜냥이 부족함을 알기에 결과적으로는 방어적인 발제문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동진 독서법>이나 <빨간 책방>을 참고하는 것은 어쩌면 또 다른 마약이 아닐까 싶다. 스스로 책에 설득되는 경우를 많이 겪었기에 이런 지식인들의 방송도 또다른 암초가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책이나 팟캐스트를 추천하는 이유는 '솔직'하기 때문이다. 이동진 평론가의 화법은 결코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항상 자신의 느낌이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을 뿐 아니라 특유의 유머는 내가 이 사람의 강의를 듣는다기 보다는 대화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준다. 본인이 명성이나 권위에 딱히 좌우받지 않는 성격이라면, 장점만 쏙쏙 뽑아먹을 수 있는 책이라고 본다. 나 같은 사람이라면....? 최대한 비판적으로 읽고 들어보자. 결국 내 주관을 뚜렷히 세우는 방법은 다청, 다독, 다작 뿐이라 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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