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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플릭스/논픽션

2000년대 최고의 기업 사기 스릴러, 『배드블러드』

by 북플릭스 2020. 7. 17.

#1 프롤로그

제목과 표지가 이렇게 강렬하게 맘에 끌렸던 적이 있었나 싶다. 다소 더워진 오후 강남역 알라딘 매장에서 어떤 내용인지도, 무슨 장르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집은 이 책을 나는 홀린듯이 읽어 나갔다. 그런데 읽을수록 디자인보다 내용이 훨씬 더 흥미로운 책이구나 싶었다. 원체 내가 스타트업이나 최신 공학기술에 대한 흥미가 많기도 하지만,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반전,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실화 기반' 이라는 배경은 오랜만에 서점에 죽치고 앉아 책을 읽게 하기에 충분한 요소였다. 특히 요즘 고전과 경제학 책을 주로 읽다보니 뇌가 굳어가는 느낌이 들었기에, 나에게 작은 보상을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근 몇 달만에 독서를 오롯이 취미로 향유한 느낌이 들었는데, 책의 완성도도 한 몫을 한 것 같다. 

 

룩아워티에서 결국 완독!


#2 테라노스

작품의 중심은 '테라노스'라는 미국의 생명공학 스타트업 기업이다. 엘리자베스 홈즈라는 스탠포드 출신의 젊은 여성 기업가가 세운 이 회사는 손가락만한 작은 혈액검사 키트로 수많은 질병을 검사하여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겠다는 사명을 가진 곳이다. 지적이고 냉철한 금발의 여성 CEO, 생명을 구하겠다는 야심찬 목표, 첨단 생명공학 기술에 목말라 하던  당시 미국의 벤처시장은 이 회사를 금새 가장 핫한 스타트업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집에서 뽑은 피 한방울로 수백 가지 건강 검사를 할 수 있다는 테라노스의 캐츠프레이즈는 비싼 의료비에 허덕이던 미국인들에게 혁명과도 같았을 것이다.

 

거기에 권위있는 학자 및 투자자들의 긍정적인 평가와 그 당시 미국의 내노라 하는 대기업 및 군대와의 공급계약은 이 회사를 미국 의료기술의 미래라고 부르기에 충분한 상황을 연출했다. 가장 잘 나갔을 때는 기업가치가 10조원에 달하던 테라노스, 하지만 이 모든것은 사기극으로 드러나게 된다.


#3 엘리자베스 홈즈

사실 <배드블러드>의 진짜 주인공은 창립자이자 CEO인 엘리자베스 홈즈라고 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돈과 성공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던 그녀는 스탠퍼드에 입학 한 뒤, 방학동안 테라노스의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돌연 자퇴를 해 버린다. 여기까지만 보면 미국의 전설적인 사업가인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와 유사항 행보라 볼 수 있겠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 다르게 나타났다. 회사의 기술 개발을 극도의 보안 속에 관리하고, 자신과 결이 맞지 않는 직원들은 무자비하게 잘라냈다. 무엇보다 홈즈는 태연하게 대중들에게 거짓말을 해 나갔다. 존재하지 않는 기술을 자랑했으며 기업의 현 위치를 과대하게 포장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이 모든 일에 대해서 아무런 죄책감을 갖지 않았다.

 

게다가 <배드블러드>의 작가이자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자 존 테리루의 용기있는 취재로 테라노스의 비극이 온 세상에 밝혀진 지금도 그녀는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그간 행보를 미루어 봤을 때, 그녀는 아마 '소시오패스'에 가깝지 않을까?

 

테라노스의 CEO, 엘리자베스 홈즈


#4 긴장감 넘치는 묘사, 그리고 믿기지 않는 실화

<배드블러드>는 불과 몇년전에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실화 기반의 작품이다. 특히 위에 말한대로 작가인 존 캐리루는 테라노스의 비밀을 직접 취재했으며, 수많은 방해공작에도 포기하지 않고 이 거대한 사기극을 밝혀낸 기자이다. 사건을 파헤친 당사자가 직접 쓴 작품인지라 방대한 자료조사가 일품이다. 기자 특유의 딱딱하지만 정확한 문체로 테라노스가 자신들의 약점을 어떻게 숨겼으며 어떤 방식으로 회사의 가치를 유지해왔는지를 제대로 묘사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인물묘사가 두드러지는데, 작중 인물들의 대사와 배경 설명은 독자들로 하여금 더욱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준다. 특히 존 케리루가 본격적으로 테라노스의 비밀을 언론에 발표하려는 시기, 테라노스를 대변하는 변호사들의 악의적인 공세에 증인들이 공포를 느끼는 장면들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긴장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단순한 사실을 나열하는 르포임에도 불구하고 독자에게 이런 스릴을 느끼게 하는 비결은 물론 소재의 특별함도 있겠지만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다고 밖에 볼 수 없지 않을까.


#5 우리는 어리석은가?

<배드블러드>는 얼핏 한 기업인의 거대한 사기극처럼 보이지만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수많은 전문가들의 의문에도 아무런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는 투자자들과 샛별처럼 떠오는 유명인을 띄워주기에 아랑곳 없던 매스미디어를 생각하면 '후광효과'가 굉장히 무서운 것임을 상기하게 된다. 

 

테라노스가 가진 어설픈 기술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은 환호했다. 투자자들은 일확천금을 할 수 있다는 욕심에 판단력을 잃었고, 소위 우리가 '전문가'라고 부르는 집단들은 대중들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엘리자베스 홈즈의 지도교수였던 스탠퍼드의 로버트슨 교수는 끝까지 홈즈와 테라노스를 지지했다.

 

아마 테라노스의 사기극을 <배드블러드>로 접한 독자들은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홈즈는 테라노스의 기술을 특별히 공개석상에서 발표한 적이 없었고, 정부나 권위 있는 집단의 인증을 받은 적도 없었다. 그저 테라노스의 장및빛 미래만으로 이 모든 의심을 거두어들인 사람들이 이상해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 작품과 별개로 삶을 바라보면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빈도로 어리석은 결정을 한다. 몇만원 짜리 옷을 조금이라도 싸게 구입하기 위해 인터넷 최저가를 찾아다니면서, 뼈빠지게 모은 종잣돈을 잘 알지도 못하는 회사의 주식을 매수하는데 쓰는가 하면, 밥먹는 돈을 아껴가면서 흔히 말하는 시발비용에는 큰 돈을 턱턱 지출하기도 한다. 책을 읽으면서는 기업의 도덕성이나, 올바른 조직문화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될 줄 알았는데 책장을 덮고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개인의 올바른 판단력에 대해 더 많은 의문이 생겨났다.

 

나이가 들면서 순간 순간의 올바른 선택이 미래의 많은 부분을 결정함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대중의 함성과 소란에 흘러가기보다는 나만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중심을 잡는 것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거나 올바른 기업이념에 대해 고찰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좋은 작품이 될 것 같다.  분더캄머 독서모임의 지정도서이기도 한데, 멤버분들은 어떤 점을 느꼈을지 참 궁금하다. 얼른 다음주가 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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