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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플릭스/논픽션

재미는 ㅇㅋ 깊이는 글쎄, 『아무튼 술』

by 북플릭스 2020. 5. 4.

#1 프롤로그

제목부터 물씬 비판적 어조를 띄웠기에 시작이 참 난감하다. 독서모임을 운영하면서 조금 더 색다른 방식을 추가하고 싶어 우리가 흔히 낭만처럼 얘기하는 '술과 곁들인 독서모임' 포맷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하지만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든 간에 '독서모임'이기에 (물론 이면에는 멤버분들의 친목도모라는 의도도 있지만) 술과 함께 곁들일 책을 고르고 시작했다. 그리고 그 책이 바로 이 <아무튼, 술> 이다. 아직 모임을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책의 내용처럼 매우 유쾌한 자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라면, 특히 더더욱. 

 

하지만 순수하게 '독서모임'의 측면에서는 걱정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2 김혼비 작가

작가의 이름을 처음 보고 든 생각은 부러움이었다. 만약 내가 저런 이름이었다면 엄청 만족하며 살았겠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독특했다. 그런데 영국의 유명한 축구광인 '닉 혼비'에서 따온 필명이라고 한다. 약간 실망했지만 어쨌든 작가가 계속해서 말하는 '축구'에 대한 열정을 가득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닉 혼비는 아스날 팬이라니 콥인 나에게는 뭐 그닥...) 

 

여하튼 첫 작품인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가 굉장히 많은 찬사를 받은 듯 하다. YES24와 알라딘의 많은 한줄평이 <우호여>를 보고 이 책도 당연히 구매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니. 근래들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개인들의 에세이에 질려버린 터라 아마 사지 않을 듯 싶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는 기법 하나는 탁월한 작가인 것 같다. 이 책 <아무튼, 술>을 읽으면서도 작가의 언어유희, 드립에는 혀를 내두르게 되었다. 아마 브런치 쪽에서 가장 좋아할 스타일이 아닐까? 

 

논리적 글쓰기와는 대척점에 있는, 김혼비 작가의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글솜씨는 사실 재능이라고 봐야한다. 작가의 직업이 뭔지 정확히 나오지는 않았지만 평소 글을 많이 읽고 쓰는 분이 아닐까 막연하게 추측해본다. 그게 아니라면, 진짜 재능러인거고.


#3 술에 대한 예찬론

그야말로 '에세이'라는 장르에 가장 부합한 책이 아닐까 싶다. 작가는 일단 개인적으로 걱정이 될 정도로 술을 많이 마시는 것 같고 -_-; 수능 백일주에서 시작된 예사롭지 않은 술의 첫만남부터 혼술로 마무리되는 마지막까지 이것저것 참 에피소드도 많이 가지고 있으신 듯 하다. '끼리끼리는 사이언스' (부정적인 뜻은 아님) 답게 친구분들도 다들 유쾌하며 호쾌하다. 인생에서 술에 대한 날카로운 기억을 되짚어보면, 그 경험이 기억으로 남겨지는데는 술 자체보다는 같이 있었던 사람들이 중요하다. 별것 아닌 에피소드로 끝날 얘기들이 구성원들의 개성이 모여 잊지못할 스토리가 되어 남는 경우가 많기 때문. 그런 점에서 김혼비 작가의 친구들도 이 책에 대해 상당수 지분이 있지 않을까?

 

에필로그 포함 2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이 책을 읽다보니 술을 먹고 싶어졌다. 직장인이 된 뒤로 술을 굉장히 멀리하게 되었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구시대적인 현 직장의 술문화가 한 몫했다.) 친구들과도 수제맥주를 더 즐기게 되었다. 특히 아무리 그래도 혼자 EPL, 미드, 영화를 볼 땐 치킨을 시켜 무조건 호가든 병맥주 하나라도 구색처럼 갖추던 나였는데 이제 거의 제로콜라로 대체하곤 한다. 이렇게 혼자 술을 먹은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술'자체에 대해 미련이 많이 없어진 상태인데, 이런 나에게 을지로의 핫한 플레이스에서 한 잔 하자! 라는 카톡을 친구에게 날리게 하였으니 글의 목적이나 힘은 굉장히 뚜렷하다. (다만 저 약속은 6월 초까지 미뤄졌다.)

 

요즘 시대에 걸맞는 매력적인 글빨 + 술이라는 대중적인 소재 + 약간의 사유, 이것이 <아무튼, 술>을 묘사하는 나만의 정의다. 여기서 김혼비 작가의 인터뷰 하나 읽고 가자. 책을 읽고 이 인터뷰를 보고 나니 좀 더 깊숙하게 글이 와닿는 느낌이 들었음.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ridibooks&logNo=221691108672&parentCategoryNo=&categoryNo=24&viewDate=&isShowPopularPosts=true&from=search

 

우아하고 호쾌한 취향을 쓰다, <아무튼,술> 김혼비 작가 인터뷰

누군가 당신에게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묻는다면 뭐라 대답할 것인가? 여기 당당히 “술!”이라...

blog.naver.com


#4 그러나 거기까지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느 순간 닿게되는 벽들이 있다. 좋아하는 책이 생기고, 그 작가의 책들을 읽게 되고, 비슷한 장르의 추천도서를 접하고, 점점 다른 세계로 독서의 범위가 확장된다. 베스트셀러에서 스테디셀러로, 스테디셀러에서 고전으로, 이건 나만의 독서경로이긴 하지만, 독서의 길은 개인의 세계를 확장시킨다는 점에서 대부분 비슷한 경로를 취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문득 독서에 투입하는 시간이 너무 소중해 질 때가 있다. 내가 평생을 살면서 몇 권의 책을 더 읽을 수 있을까? 이 시간의 유한성은 내가 읽을 책을 선정하는데 들이는 엄격한 잣대로 이어지게 된다. 좋은 책을 읽어야지! 이런 생각은 사실 취미로의 독서에 결코 좋지는 않다. 우리나라에 한 때 불었던 서울대 추천도서 100선, 하버드 추천도서 100선 처럼 오히려 독서욕구를 떨어트리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하니까. 내 독서지론도 일단 책은 재밌어야 한다! 이다. 그런데 여기에 더 중요한 조건이 달린다. 내 인생에 변화를 가져다 주어야 한다. 그것도 사소하게가 아니라 크게. 

 

그리고 더 솔직하게 말하면, 스테디셀러나 고전 처럼 이미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의 치밀한 검증을 받으면서 살아남은 책들은 지적재미와 인생의 변화점을 동시에 가져다 주곤 한다. 그러니 꼭 재미와 배움이 공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이 책은 어땠느냐. <아무튼, 술>은 재미있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나니 내가 뭘 읽었지? 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술에 대한 작가만의 생각이나 에피소드, 허술한 술 등의 깨알같은 드립들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내 인생을 바꿔줄만한 그 무언가가 들어있지는 않았다. 요즘같은 에세이 전성시대는 그만큼 책을 선정하는 기준도 높아져야 함을 의미한다. 개개인의 인생은 저마다 판이하게 다르다. 그런데 남의 인생과 생각을 다룬 에세이를 반복해서 읽으며, 그저 공감과 웃음으로 재미를 찾는다면 사실 독서를 했다기 보다는 시간을 소비했다고 보는게 맞다. 그것이 나쁜 소비는 아닐지라도 말이다.


#5 술로만 열리는 말 따위는 없다.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읽은 것처럼 사실 사람의 기억은 종점효과에 크게 좌우된다. 경험의 마무리가 괜찮았다면 과정이 다사다난 했을지라도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책 또한 이점이 중요하다. 도입부나 내용이 별로였어도 마무리가 훌륭하면 나쁘지 않았던 책으로 남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마지막 챕터 '술로만 열리는 말'은 나의 종점효과를 크게 부각시켰다. 작가가 무슨 의미로 저런 글을 썼는지는 알겠다. 물론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나오는 속마음이나 진심에 가까운 말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술이 얹어진 말들은 작가가 말했다시피 어색해질까봐, 민망해서, 불편해질까봐 등의 이유를 뚫고 나오는 말들이다. 하지만 그 근본은 '그런 벽을 깨부수면서 까지는 하고싶지 않았던 말' 일 테다. 그렇다면 우리의 진심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맨정신에서 이런 저런 사회적 규약과 내 맞은편의 있는 사람의 기분을 고려해 '할 말 안할 말을 가리는 것'이 더 올바른 태도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난 그것이 좀 더 좋다. 더 지성이 있고 배려가 있고 교양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기질이 그런 말을 못하는 사람이라면 술의 힘을 빌려서 일시적으로 기질을 누그러뜨리는 대신, 많은 생각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맨정신으로 할 줄 아는 기질로 바꾸는게 훨씬 더 멋진 변화라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술의 힘을 얹어 나오는 말들이 과연 진심에 더 가까운지조차 아직 잘 모르겠다. 진실과 사실이 과연 관계에서 긍정적인 역할만 맡는 아름다운 히로인도 아닌 것 같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너무 극단적인 비유일지 모르지만 원래 그렇지 않았던 사람이 술의 힘을 빌려 계속해서 반전스러운 모습을 보인다면 난 그를 결코 깊게 신뢰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래서 나이가 들 수록 커피 한잔에도 깊고 단단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찾게 된다. 학생 때야 사회적 연결에 어려움을 느껴 술의 힘을 빌린적이 많았지만, 벌써 30대 중반이 다 되어가는 지금 자기의 의사를 무언가에 얹어야만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안타까운 일 아닌가.


#6 끝으로

재미있게 읽었다고 시작하더니, 점차 신랄한 비판으로 서평을 써내려가는 나도 성숙한 와인같은 사람은 아닌가 보다. (근데 요즘 와인을 찾곤 한다.) 그래도 내가 만든 독서모임 책이라고 칭찬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책이 별로면 별로라서 토론의 열기가 달아오르는 경험도 많이 했기에, 그리고 책이 별로라는 건 나만의 생각이기에 이런 서평이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원래 토론은 의견이 갈려야 재미지다. 그래서 더욱 독서모임이 기대가 된다!

 

그럼 이번 주에 뵙겠습니다 :)


분당 독서모임 분더카머에서는 이 두 책을 같이 읽고 토론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저희 홈페이지를 방문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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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더캄머 분당 독서모임 WunderKa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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